어려서 TV를 보면 세 친구 같은 대학생이나 젊은 회사원들이 출가해서 혼자 거주하는 모습이 나오면 냉장고 안에 맥주가 항상 있고, 언제든 꺼내서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성인이 돼서 혼자 살게 되면 냉장고에 맥주를 넣어두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먹는 모습을 상상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0살이 되면서 기회가 왔고 혼자 자취를 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맥주로 냉장고 한 면을 다 채웠습니다.
술을 드시지 않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성인이 되어 첫 술을 마셨습니다. 그 이후 20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저녁시간 다들 잠든시간 소파에 기대어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이 소소한 낙이 되었습니다. 항상 냉장고 안에는 편의점에서 파는 4캔의 11,000원짜리 맥주가 항상 있습니다.
보물을 발견하다.
며칠 전 시골에 추수를 마친 쌀을 가지러 갔습니다.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던 곳에 리모델링만 해서 90세가 넘으신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십니다. 아버지 형제 5남매가 모두 떠나서 혼자 지내시며 도지 주신 논에서 나온 쌀을 5남매에게 나눠주십니다. 나이가 몇이든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해지네요.
쌀을 다 싣고 오랜만에 방문하게 된 시골집을 여기저기 둘러 보았습니다. 집 뒤편으로는 언제부터 자랐는지 모른 대나무가 담을 만들어 주었고 어릴 때 명절에 가면 뛰어놀던 마당은 모두 텃밭이 되어 여러 작물을 키우는 곳이 되었습니다. 안방 맞은편으로 작은 방이 있었는데 거의 창고로 사용하고 있어 들어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간도 남아서 한번 들어가 봤는데 불도 켜지지 않는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저곳 둘러보는데 막내 고모가 모아 두었던 30년은 지난 오래된 성냥들과 이빨 빠진 오래된 그릇들 그리고 잡동산이 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석진 곳에 플라스틱 박스가 쌓여있는데 먼가 싶어 보니 오래된 술이였습니다.
처음 술을 먹던 그 시절에 먹던 소주들이었습니다. 참이슬은 없지만 산 소주랑 그린, 그리고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청하였습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데도 괜시리 반갑더군요. 신기해서 만져 보면서 와이프에게 이거 20년은 된 거라고 신기해하면서 이리저리 만져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거 먹을 수 있나?"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종류별로 하나씩 같고 왔습니다. 일단 그린 소주가 한 박스 정도 있었고 위에 소주 외에는 빨간진로, 참나무통 맑은 소주 그리고 처음 보는 김삿갓이라는 소주도 있었습니다. 아 또 한 가지 지금은 14도 17도 소주들이 유행하지만 당시 소주는 25도 진로였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소주 이름이 '순한 진로'라는 것이 있는데 이 소주가 23도였습니다. ㅎ
집에 와서 자랑할 겸 사진을 찍고 나서 찾아 봤습니다.
오래된 소주 먹어도 될까요?
결론부터 말해 드리겠습니다. 오래된 소주 마셔도 됩니다. 소주는 유통기한이 따로 없습니다. 소주는 발효주와 달리 20도가 넘는 증류주 이기 때문에 변질이 없다고 합니다. 도수가 높고 불순물이 없기에 소주는 오래되어도 마셔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개봉하지 않는 이상 마셔도 된다고 하네요.
병에 날자가 적혀있는데 이건 유통기한이 아니고 병입 일자라고 합니다. 병에 술을 담은 일자를 기록한것으로 알면 되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20년 지난 소주를 먹을만큼 실험정신이 높지 않습니다. 건강을 담보로 해서 먹을 만큼 술을 즐기지 않습니다. 아마도 기념으로 보관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당시 가격이 800원이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될까요?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요.
진정한 보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무리
요즘 서민의 대표 술인 소주가 핫합니다. 가격의 변동에 따라 뉴스에 주인공으로 많이 출연하고 있네요 처음 제가 먹을 때 2000원이었던 것 같은데 기본 5천 원이 되었습니다. 소주 한 병을 먹으면서도 주머니 생각해야 되는 요즘 물가에 씁쓸해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오랜만에 친구랑 만나서 소주한잔 하며 어릴 때 생각 없이 마시던 때를 떠올리며 그 추억을 안주삼아 한잔 하는 시간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점점 나이 들어가나 봅니다.
연말에 모임 많은데 술 조심해서 안전하게 마시고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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